피비린내 나는 시대를 통과한 늙은 갱스터의 초라한 고해성사

“I heard you paint houses.”
“페인트칠을 하신다면서요.”
1960년대 미국을 쥐락펴락했던 전설적인 노조위원장 지미 호파(알 파치노)가 마피아의 청부업자 프랭크 시런(로버트 드 니로)에게 건넨 첫인사다.
이들의 세계에서 ‘페인트’란, 총을 맞은 사람의 피가 벽에 튀는 것을 뜻하는 섬뜩한 마피아의 은어다.
그토록 숱하게 타인의 피로 벽을 칠하며 피비린내 나는 시대를 통과한 남자의 끝은 어떨까.
카메라가 요양원 복도를 따라 천천히 미끄러지듯 들어가면, 휠체어에 덩그러니 앉아 허공을 응시하는 늙고 초라한 프랭크의 모습이 스크린을 채운다.
마틴 스코세이지의 <아이리시맨>은 피가 끓어오르는 낭만적인 마피아 영웅담이 아니다.
주인공은 젊은 시절의 화려한 폭력과 배신을 무용담처럼 읊조리지만, 정작 3시간 29분의 긴 여정 끝에 남는 것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적막한 병실뿐이다.
갱스터 장르의 뼈대를 세운 거장이 자신이 평생 쌓아 올린 범죄 영화의 신화를 스스로 해체하고 장례를 치르는, 아주 무겁고 쓸쓸한 마침표다.

사라진 지미 호파, 그리고 로버트 드 니로의 눈물
1975년 7월, 미국 최대 노동조합 팀스터스의 수장 지미 호파가 식당 주차장에서 증발하듯 사라진다.
당시 대통령 다음으로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다던 그의 시신은 뼛조각 하나 발견되지 않았고, 이 사건은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훗날 전직 수사관이자 작가인 찰스 브랜트가 프랭크 시런의 임종 전 고백을 엮어 낸 논픽션 가 세상에 나왔고, 이 책이 바로 영화의 원작이 된다.
스코세이지 감독의 과거 매체 인터뷰에 따르면, 새로운 프로젝트를 찾고 있던 로버트 드 니로는 이 책을 읽고 꽤나 감정적으로 동요했다고 한다.
그는 감독을 직접 찾아가 책을 건네며 주인공 프랭크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설명하다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마피아 영화의 아이콘인 그를 무너뜨린 건 화려한 범죄 스펙터클이 아니었다.
거대한 두 권력 사이에서, 결국 생존을 위해 가장 친한 친구의 등에 총을 쏴야만 했던 톱니바퀴 같은 인간의 처절한 딜레마를 보았기 때문이다.

시간이라는 가장 완벽하고 잔인한 처형인
영화는 최첨단 디에이징(De-aging) 기술을 동원해 일흔이 넘은 노배우들의 주름을 팽팽하게 폈다.
하지만 노인 특유의 둔탁한 발걸음과 구부정한 어깨마저 감추지는 못했다.
관객은 매끈한 젊은 얼굴을 한 노인들의 어색한 몸짓을 긴 러닝타임 내내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극이 후반부로 향할수록 이 이질감은 오히려 소름 끼치는 사실주의로 변모한다.
영화는 조연급 마피아들이 등장할 때마다 화면 하단에 자막으로 그들의 최후를 적어둔다.
‘1982년, 주차장에서 총격으로 사망’, ‘1979년, 폭탄 테러로 사망’.
그들은 대부분 비참하지만 순식간에 죽음을 맞이한다.
반면 운 좋게 살아남은 최고위층 권력자 러셀(조 페시)과 프랭크의 말로는 어떤가.
그들은 총알이 빗발치는 거리가 아니라 요양병원과 감옥에 갇힌다.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이라는 감옥 속에서, 이탈리아 식당을 호령하던 마피아 보스는 치아가 빠져 딱딱한 빵을 포도 주스에 적셔 먹고, 뇌졸중에 걸려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초라한 노인네로 전락한다.
스코세이지는 폭력으로 쌓아 올린 권력이 시간 앞에서 얼마나 무력하고 비참하게 부서지는지를 길고 집요하게 보여준다.

딸의 침묵, 그리고 비겁한 자의 변명

지미의 뒤통수에 총을 쏜 후, 프랭크는 지미의 아내 조(Jo)에게 전화를 걸어 “남편이 실종되어 유감이다”라며 더듬거리며 위로를 건넨다.
수십 명을 망설임 없이 쏴 죽이던 냉혹한 킬러가, 전화통을 붙잡고 알량한 안부를 묻는 이 장면은 생존을 위해 인간이 어디까지 밑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 모든 위선을 꿰뚫어 보는 존재가 있다. 프랭크의 딸 페기(안나 파킨)다.
그녀는 영화 내내 대사가 거의 없지만, 무겁고 서늘한 시선으로 아버지의 죄악을 응시한다.
지미가 실종됐다는 뉴스가 나오던 날, 페기는 프랭크에게 묻는다.
“왜 아직 조 아줌마에게 전화하지 않았어요?” 프랭크가 차마 입을 떼지 못하는 그 순간, 딸은 아버지가 살인자임을 확신하고 영원히 그를 떠난다.

영화 후반부, 고해성사를 하던 프랭크가 지미의 아내에게 걸었던 그 전화에 대해 털어놓자 신부는 묻는다.
“대체 어떤 인간이 그런 전화를 합니까?” 프랭크는 시선을 떨구며 답한다.
“말할 수 없습니다.”
찰나의 침묵 속에 마피아의 의리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하고 비겁한 것인지 고스란히 묻어난다.
닫지 못한 문틈 사이, 스코세이지가 남긴 쓸쓸한 유언
모든 동료가 떠나고, 스스로 자신의 초록색 관과 묏자리를 고르며 죽음을 기다리는 요양원에서의 프랭크.
신부가 기도를 마치고 방을 나서려 할 때 그는 넌지시 부탁한다.
“문을 완전히 닫지 말고 조금 열어두세요.”
과거 지미 호파가 안전을 위해 틈을 내어 문을 열어두던 습관을 흉내 낸 것이지만, 그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스코세이지 감독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와의 인터뷰에서 이 마지막 장면에 대해 “프랭크는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 문틈을 통해 과거의 망령이든 죽음이든 무언가와 계속 연결되어 있기를 바라는 인간의 절박함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가족에게도 버림받고 스스로 영혼을 파괴해버린 남자가, 마지막 순간에 닫힌 공간을 두려워하며 세상과의 끈을 놓지 못하는 그 기막힌 모순.
스크린이 암전된 후에도, 그 좁은 문틈 사이로 갱스터의 화려한 껍데기를 벗어던진 한 늙은이의 지독한 고독이 속절없이 새어 나온다.

이런 사람들에게 권한다
총탄이 빗발치고 자동차가 폭발하는 아드레날린 넘치는 마피아 액션을 기대한다면 209분이라는 러닝타임은 꽤나 가혹한 고문이 될 것이다.
역사적인 암살 사건들조차 영화는 철저히 관찰자의 시선에서 감정을 배제한 채 건조하게 묘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려한 폭력의 시대가 저문 뒤, 무대 위에 덩그러니 남겨진 인간들이 어떻게 늙고 바스러져 가는지를 끝까지 지켜볼 인내심이 있는 사람.
마피아라는 낭만화된 장르의 신화가 앙상한 뼈대만 남기고 철저히 붕괴하는 과정을 묵묵히 직면할 준비가 된 사람에게 이 작품은 압도적인 영상 체험이자 문학적인 성찰이 될 것이다.

여기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폭력과 새로운 시대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밀려나는 늙은 보안관도 있다. 동전 던지기로 생사를 결정하는 무자비한 세상 속, 낡은 세계관을 가진 노인의 무력감이 궁금하다면.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세상의 무심한 폭력 앞에서 늙은 이성이 마주한 체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