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존재의 증명 : <향수> 책과 영화 비교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1985)와 톰 티크베어 감독의 영화 <향수>(2006)는 천재적인 후각을 가졌지만 정작 자신만의 체취는 전혀 없는 남자,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의 일대기를 다룬다.

18세기 프랑스의 가장 악취 나는 생선 시장에서 태어난 그가 세상의 모든 냄새를 소유하려 집착하는 과정은 단순한 스릴러를 넘어선다. 체취가 없다는 것은 곧 타인에게 어떤 인상도 남길 수 없는 ‘무존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살인마저 서슴지 않았던 이 외로운 인물을 소설과 영화는 각기 다른 시각과 온도로 풀어낸다. 두 작품의 핵심적인 차이점을 중심으로 그르누이의 고독을 들여다보려 한다.

영화 향수 포스터 이미지로, 여성의 실루엣이 붉은 꽃잎처럼 흩어지는 그래픽을 통해 관능과 죽음, 향의 이미지를 강렬하게 압축한 비주얼.
출처 : tmdb

소설과 영화의 차이 1: ‘그르누이’를 바라보는 시선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주인공 그르누이의 외모와 성향에 대한 묘사다.

원작 소설에서 그르누이는 타인의 피를 빨아먹고 기생하는 ‘진드기’나 ‘두꺼비’ 같은 흉측하고 기괴한 존재로 묘사된다. 그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전혀 없으며, 철저한 혐오와 악의로 뭉친 소시오패스에 가깝다. 독자는 그의 내면을 따라가면서도 묘한 불쾌감과 거리를 두게 된다.

반면 영화 속 그르누이(벤 위쇼)는 다소 연민을 자아내는 인물로 그려진다. 벤 위쇼의 유약하고 순수한 이미지가 더해져, 영화는 그가 악마라기보다는 타인과 교감하는 방법을 전혀 배우지 못한 결핍된 소년처럼 보이게 만든다. 냄새에 집착하는 행동 역시 순수한 호기심과 맹목적인 탐구의 결과로 다가오는 경향이 있다.

영화 향수 스틸 이미지로, 남성 주인공이 액체를 조심스럽게 따라내며 향을 추출하는 과정에 몰입한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
출처 : tmdb

소설과 영화의 차이 2: 동굴 속에서의 7년

원작 소설에서 매우 비중 있게 다뤄지는 부분 중 하나는 그르누이가 캉탈 산맥의 동굴에 숨어 지내는 7년의 시간이다. 소설은 이 기간 동안 그르누이가 자신의 내면 속에 거대한 ‘향기의 왕국’을 건설하고, 그 안에서 자신이 신이 되는 환상에 빠져 완벽한 고독을 즐기는 철학적 과정을 깊이 있게 서술한다.

하지만 시각적 전개가 중요한 영화에서는 이 7년의 칩거 기간이 비교적 짧고 파편적으로 처리된다. 대신 영화는 그가 다시 세상으로 나와 향수를 제조하는 과정과 살인 행각의 시각적 긴장감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원작이 그르누이의 내면적 고독에 집중했다면, 영화는 시청각적인 사건의 흐름에 집중한 셈이다.

영화 향수 스틸 이미지로, 푸른 드레스를 입은 붉은 머리 여성 인물이 흰 장미를 들고 있고 수척해진 남성 주인공이 기둥 뒤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장면.
출처 : tmdb

소설과 영화의 차이 3: 광장 씬과 결말의 의미

두 작품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후반부 사형장 광장 씬에서 드러난다. 자신이 만든 궁극의 향수로 광장의 모든 군중을 굴복시키고 난 뒤, 그르누이가 느끼는 감정이 책과 영화에서 전혀 다르게 묘사된다.

  • 원작 소설의 경멸: 소설 속 그르누이는 향수에 취해 자신을 숭배하는 인간들을 보며 극도의 환멸과 경멸을 느낀다. 그는 인간들이 사랑하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입고 있는 ‘향수’일 뿐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인류에 대한 지독한 증오를 확고히 한 채 파리로 돌아가 스스로 파멸을 맞이한다.

  • 영화의 회한: 반면 영화에서는 그르누이가 군중을 보며 과거에 자신이 실수로 죽였던 첫 번째 여인(자두 파는 소녀)을 떠올린다. 향수로는 사람들의 감각을 지배할 수 있을지언정, 진정한 교감과 사랑은 얻을 수 없음을 깨닫고 상실감의 눈물을 흘린다. 원작이 철저한 악인의 허무함으로 끝을 맺는다면, 영화는 사랑받지 못한 인간의 비극적인 후회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 향수 스틸 이미지로, 푸른 코트를 입은 남성 주인공이 광장을 가득 메운 군중 앞에 서서 압도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장면.
출처 : tmdb

존재를 증명하려 했던 외로운 인간의 끝

<향수>는 냄새라는 보이지 않는 감각을 통해 ‘나는 세상에 어떻게 존재하는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그르누이가 그토록 갈망했던 것은 최고의 향수 그 자체가 아니라, 타인과 관계를 맺고 세상에 자신의 자리를 만들고 싶었던 맹목적인 생존 본능이었을지도 모른다. 소설의 치밀한 심리 묘사와 영화의 압도적인 영상미, 두 가지 매력이 확연히 다른 만큼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감상하며 그 차이를 비교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영화 향수 스틸 이미지로, 푸른 옷을 입은 남성 주인공이 머리 위로 액체를 붓고 향과 감각에 몰두하는 인물의 집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
출처 : t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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