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
앞서 소개했던 영화 <서울의 봄>에서 탐욕스러운 군인들이 훔쳐낸 권력이 이듬해 봄에 얼마나 끔찍한 비극을 만들어냈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자연스럽게 이 영화로 넘어오면 된다.
2017년에 개봉해 1,200만 명이 넘는 관객의 마음을 울린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다.
1980년 5월, 광주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렸던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피터)와 그를 태우고 광주까지 달려갔던 실제 택시 기사 김사복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 영화는 거창한 민주주의나 영웅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저 밀린 월세 10만 원을 벌기 위해 아무것도 모른 채 광주로 떠났던 아주 평범한 깍쟁이 아저씨가, 거대한 폭력 앞에서 어떻게 조금씩 변해가는지를 조용히 따라갈 뿐이다.

10만 원에 시작된 아주 평범한 출근길
주인공 만섭(송강호)은 서울에서 초등학생 딸을 혼자 키우며 살아가는 낡은 초록색 택시 기사다. 데모하는 대학생들을 보면 “공부하라고 대학 보내놨더니 쯧쯧” 혀를 차고, 오직 내 딸 신발 하나 예쁜 거 사주는 게 인생의 전부인 지극히 현실적인 소시민이다.

어느 날, 광주까지 갔다가 통금 시간 전에 돌아오면 10만 원을 주겠다는 외국인 손님(토마스 크레취만)의 이야기를 몰래 엿듣고는 얌체처럼 그 손님을 가로채 광주로 향한다. 광주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 외국인이 왜 그 위험한 곳에 가려는지 만섭은 전혀 관심이 없다. 그저 밀린 월세를 한 방에 갚을 수 있다는 생각에 콧노래를 부르며 엑셀을 밟는 만섭의 가벼운 모습은, 앞으로 그가 마주할 무거운 진실과 아주 강렬하게 대비된다.

라디오 뉴스와 완전히 다른, 고립된 도시의 맨얼굴
우여곡절 끝에 샛길로 몰래 들어간 광주의 모습은 만섭의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라디오 뉴스에서는 소수의 불량배들이 난동을 피운다고 했는데, 막상 들어가 본 도시는 군인들에게 완전히 둘러싸여 피를 흘리고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슬프고 답답했던 건, 아무도 이 사실을 밖으로 알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전화도 끊기고 길도 막힌 고립된 섬 같은 광주 안에서, 그곳의 평범한 택시 기사들(유해진 등)과 대학생(류준열)은 생면부지의 서울 택시 기사와 외국인 기자를 진심으로 환영한다. 자기들은 피를 흘리면서도 손님들에게 정성껏 주먹밥을 쥐여주고, 이 진실을 제발 밖으로 알려달라고 부탁하는 광주 사람들의 순박한 모습은 보는 내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눈물의 유턴, 송강호가 보여준 진짜 용기의 얼굴
이 영화가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크게 흔들어 놓은 최고의 명장면은 후반부에 등장한다.
군인들의 폭력이 심해지자 겁에 질린 만섭은 피터를 놔두고 혼자 몰래 광주를 빠져나와 순천으로 도망친다.
안전한 순천의 한 식당에 앉아 국수를 허겁지겁 먹던 만섭. 그런데 식당 사람들은 뉴스만 믿고 “광주에서 폭도들이 난동을 피운다더라”며 혀를 찬다. 그 거짓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만섭은, 갑자기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로 억지로 국수를 목구멍으로 쑤셔 넣는다. 식당을 나온 그는 서울에 있는 딸에게 전화를 걸어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 금방 갈게”라고 울먹이며 말한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조용필의 ‘단발머리’ 노래에 맞춰, 만섭은 핸들을 꺾어 다시 그 지옥 같은 광주를 향해 눈물의 유턴을 한다. 대단한 사명감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사람으로서, 나를 믿어준 손님과 정을 나누었던 사람들을 놔두고 혼자만 편하게 살 수 없다는 아주 평범하고도 위대한 양심 때문이었다. 송강호라는 배우가 아니었다면 이 복잡하고 평범한 소시민의 갈등을 이토록 완벽하게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무겁고 피 튀기는 역사 영화가 부담스러워서 그동안 피하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이 영화만큼은 꼭 한번 봐보길 바란다.
처음부터 끝까지 ‘외부인’인 만섭의 시선으로 낯선 도시에 툭 떨어지는 경험을 하기 때문에, 억지스러운 설교나 답답함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그날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다. 137분 동안 울고 웃으며 만섭의 택시 조수석에 함께 앉아 달리다 보면, 세상을 바꾸는 건 특별한 영웅이 아니라 상식과 양심을 지키려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용기였다는 사실을 벅차게 깨닫게 될 것이다.

밀린 월세 때문에 우연히 마주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끝까지 양심의 핸들을 놓지 않았던 평범한 택시 기사의 실화를 보았다면, 그 비극이 시작되었던 1979년 12월의 가장 길고 답답했던 밤의 기록도 있다. 광주를 피로 물들였던 탐욕스러운 권력자들과 그들을 막기 위해 외롭게 싸웠던 진짜 군인들의 숨 막히는 줄다리기가 궁금하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