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는 남자가 있었다.
나치 당원 배지를 달고 전쟁 특수를 노리며, 유대인들의 값싼 노동력으로 부를 축적하려던 기회주의자.
오스카 쉰들러(리암 니슨)는 애초에 위대한 영웅이나 도덕적인 성자가 아니었다.
속물 중의 속물이었던 그가 전 재산을 털어 1,100명의 목숨을 사들이는 기막힌 역설.
스티븐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는 단순히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끔찍한 야만의 시대 속에서, 한 인간의 얄팍한 양심이 어떻게 거대한 구원으로 싹텄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무채색이 증명하는 잔혹한 시선
컬러 영화가 당연시되던 1993년, 스필버그는 굳이 카메라의 색을 다 빼버렸다.
학살의 현장을 감상적인 드라마로 포장하지 않겠다는 결심이었을까.
피의 붉은빛마저 탈색된 건조한 흑백 화면은 관객에게 기묘한 거리감을 강제한다.
유대인들이 총에 맞아 쓰러지고 짐짝처럼 버려져도, 화면은 옛날 기록물처럼 덤덤하다.
왜 그랬을까. 가해자인 나치 군인들의 눈에 유대인은 사람이 아니라 그저 ‘처리해야 할 통계 수치’이자 무채색의 덩어리에 불과했다는 것. 이 잔혹한 시선을 흑백이라는 질감 자체로 스크린에 박아 넣은 듯하다.

붉은 코트, 익명의 통계를 구체적인 생명으로
그 철저하게 통제된 무채색의 지옥 속에서 딱 한 번 시각적인 균열이 일어난다.
게토가 짓밟히고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아비규환의 한복판.
홀로 붉은 코트를 입고 아장아장 걸어가는 꼬마의 뒷모습이다.
왜 이 아이에게만 색을 입혔을까.
흑백 속에 뭉뚱그려져 있던 600만 명이라는 거대한 희생자를, ‘구체적인 한 명의 생명’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언덕 위에서 말을 타고 그 붉은 점의 궤적을 쫓던 쉰들러의 눈빛이 흔들린다.
그리고 훗날, 끔찍한 시체 수레 위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쓴 그 붉은 코트가 다시 발견되는 순간.
쉰들러의 비겁한 침묵도 완전히 무너져 내린다.
그 붉은색은 쉰들러를 향해 날아온 날카로운 비수이자, 그가 미친 듯이 타자기를 두드리며 명단을 만들게 한 피 끓는 동력이었다.

사람의 목숨값을 매기는 지독한 셈법
전쟁이 끝나고 살아남은 유대인들 앞에서 쉰들러가 오열하는 결말부는 꽤나 고통스럽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1,100명을 살려낸 위인이, 정작 자기가 구하지 못한 생명들의 무게에 짓눌려 아이처럼 바닥에 주저앉는다.
“이 금배지라면 두 명은 더… 이 차를 팔았다면 열 명은 더 살릴 수 있었어.”
생명에는 값이 없다며 시작한 명단(List) 작성이었다.
그런데 끝내 자신의 모든 소유물에 사람의 목숨값을 매기며 자책하는 이 지독한 셈법.
한 인간이 짊어질 수 있는 가장 끔찍하고 거룩한 후회 앞에서, 우리는 선과 악의 경계가 얼마나 허물어지기 쉬운지 목격하게 된다.

결국은 남은 자들의 몫
아몬 고트(랄프 파인즈) 같은 괴물에게도 나약함이 있었고, 구원자 쉰들러의 시작은 그저 탐욕스러운 사업가였다.
영화는 인간이란 원래 완벽하지 않다고 말한다.
다만 누군가는 사람을 무채색의 덩어리로 대했고, 누군가는 붉은 코트의 무게를 끝내 외면하지 못했을 뿐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거창한 영웅주의보다 타자기의 쇳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지옥 속에서도 기어코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어느 사업가의 위대한 각성.
이 길고 무거운 기록물을 다 읽고 난 뒤, 이제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수많은 무채색의 타인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는 오롯이 남은 자들의 몫이다.

선악이 칼로 무 자르듯 나뉘는 뻔한 영웅물에 피로감을 느꼈다면.
거대한 폭력 앞에서 인간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지옥의 밑바닥에서 기어코 뚫고 나오는 얄팍하지만 질긴 양심의 힘을 확인하고 싶다면 이 영화를 권한다.
단순한 역사 교과서 요약본을 기대한다면 195분짜리 흑백 화면이 꽤나 피곤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비겁한 속물이 어떻게 진짜 인간의 얼굴을 되찾아가는지 묵묵히 지켜볼 인내심이 있다면, 이 무거운 기록물은 당신의 시간을 절대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쉰들러가 한 사람의 목숨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셈을 했다면,
반대편에는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갈 폭탄을 만들어 놓고 평생을 죄책감에 짓눌려 산 남자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비극 속에서 한 천재의 이성이 어떻게 무너져 내렸는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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