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만 명의 환호 속 가장 철저히 고립된 아티스트의 실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리뷰

여기, 무대 뒤편에서 거칠게 숨을 고르는 한 남자가 있다.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7만 명의 미친듯한 함성이 쏟아지지만, 그의 뒷모습은 세상을 다 가진 록스타의 것이 아니다.

차라리 단 한 번만이라도 세상과 온전히 닿고 싶어 하는 이방인의 절박한 발걸음에 가깝다.

<보헤미안 랩소디>를 퀸의 명곡들을 빵빵한 극장 사운드로 틀어주는 훌륭한 주크박스 영화로만 본다면 반만 본 거다.

이 영화는 화려한 스타디움의 열기를 빌려오지만, 알맹이는 꽤나 서글프다.

태생부터 아웃사이더였던 한 인간이 자신의 결핍을 어떻게 씹어 삼키고 예술로 토해냈는지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보라색과 노란색 그라데이션 배경 위에 보컬의 실루엣과 한글 제목이 함께 배치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국판 포스터 이미지.
출처: tmdb

화려한 갑옷에 짓눌린 이방인의 맨얼굴

잔지바르 출신의 이민자, 뻐드렁니를 가진 소수 민족, 그리고 남들과 다른 성 정체성.

그는 세상의 잣대에서 늘 변두리로 밀려나 있었다.

그 차가운 시선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는 ‘프레디 머큐리’라는 크고 화려한 갑옷을 입었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수만 명을 쥐락펴락할수록, 무대 밖의 삶은 기괴할 정도로 텅 비어갔다.

파티가 끝나고 사람들이 떠난 거대한 저택, 수많은 고양이 사이에서 홀로 스탠드 조명을 껐다 켜는 장면.

수백만 장의 앨범을 팔아치워도, 자신을 돈줄이 아닌 진짜 인간으로 봐줄 사람이 없다는 그 지독한 고립감이 프레디의 진짜 얼굴이었다.

성공의 크기가 커질수록 그림자도 짙어지는 모순 속에서 그는 철저히 망가져 간다.

화려한 무대 조명 아래 보컬과 기타리스트, 베이시스트가 함께 연주하며 공연의 절정을 보여주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라이브 장면.
출처: tmdb

라미 말렉, 가짜가 진짜를 압도하는 순간

이 복잡한 얼굴을 스크린에 박아 넣은 건 라미 말렉의 징글징글한 연기다.

솔직히 말해, 그는 프레디 머큐리와 별로 닮지 않았다. 덩치도 작고 선도 얇다.

그런데 영화가 중반을 넘어갈 무렵이면 관객은 그가 프레디를 연기하는 ‘배우’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그는 단순히 록스타의 제스처를 흉내 내는 데 그치지 않았다.

돌출된 구강 구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가리던 불안한 습관, 무대 위에서 공간을 찢어버릴 듯 뻗어내는 스텝, 그리고 무엇보다 피아노 앞에 앉아 허공을 응시할 때의 그 텅 빈 눈동자.

라미 말렉은 프레디의 화려함 뒤에 숨은 지독한 외로움을 기가 막히게 끄집어냈다.

전혀 닮지 않은 외모를 압도적인 체화로 덮어버린 셈이다.

푸른 조명 아래 흰 러닝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보컬이 마이크 스탠드를 쥐고 역동적인 포즈를 취하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공연 장면.
출처: tmdb

노래가 아니라 피 끓는 일기장이다

그리고 음악. 이 영화에서 퀸의 노래는 배경음악이 아니라 서사 그 자체다.

관객석의 발구름을 유도해 만든 ‘We Will Rock You’는 철저히 혼자였던 그가 세상과 주파수를 맞추려던 처절한 시도였다.

“엄마, 방금 사람을 죽였어요”라고 읊조리는 ‘Bohemian Rhapsody’의 기괴한 가사는, 과거의 자신을 지워야만 했던 한 인간의 고해성사다.

오페라와 록을 뒤섞은 그 파격적인 구조 자체가, 세상의 어떤 틀에도 맞지 않아 늘 삐걱거렸던 프레디의 정체성이었다.

극장에서 이 곡들이 터져 나올 때, 우리는 단순히 귀가 즐거운 게 아니라 누군가의 찢겨진 일기장을 가장 원초적인 형태로 두드려 맞는 경험을 한다.

보라색 조명 아래 네 멤버의 얼굴이 옆모습으로 나란히 배치되어 밴드 퀸의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주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포스터 이미지.
출처: tmdb

20분짜리 유언, 라이브 에이드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라이브 에이드’ 20분은 영화사에 남을 압도적인 체험이다.

하지만 그 열광적인 떼창이 그토록 묵직하게 다가오는 건, 그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무대에 섰다는 걸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에이즈 판정을 받고 얼마 남지 않은 생명력을 땔감 삼아 건반을 두드리는 프레디.

그는 평생을 찾아 헤매던 진짜 가족(멤버들과 관객)의 품으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가장 뜨겁게 타오른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크다. 세계적인 투어와 록스타의 영광을 다룬다.

그런데 끝내 시선이 머무는 곳은 한 남자의 텅 빈 눈동자다.

무대 위의 조명은 눈이 부시지만, 마음속의 그림자는 한없이 길고 어둡다.

시간이 지나 다시 꺼내 본 이 영화는 다르게 들린다.

처음에는 흥겨운 리듬에 발을 구르게 되고, 다음에는 배우의 미친 연기와 밴드의 서사에 몰입하며, 마지막에는 프레디 머큐리라는 한 사람의 상처에 먹먹해진다.

대형 경기장 무대 위에서 밴드 멤버들이 수많은 관객 앞에 서 있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라이브 에이드 공연 장면.
출처: tmdb

💡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조선의 불타는 가마 속으로

세상과 닿기 위해 7만 명의 관중 앞에서 자신의 남은 생명력을 모조리 불태운 영국의 록스타를 만났다면,
이번엔 완벽한 아름다움을 위해 스스로 불타는 가마 속으로 걸어 들어간 조선의 천재 예술가를 만날 차례다.
예술이라는 저주를 짊어진 인간의 처절한 사투가 궁금하다면
👉 [취화선: 기어코 자신을 태워버린 어느 미치광이 천재의 붓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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