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홍진 감독의 <호프(HOPE)>가 흥미로운 이유는 미지의 외계 생명체만큼이나, 그에 맞서는(혹은 도망치는) 호포항 주민들의 군상이 너무도 입체적이고 기괴하기 때문이다.
거대한 우주적 재난 앞에서 호포항 주민들과 외계인들은 각자의 생존 본능에 따라 몇 개의 무리로 나뉘어 움직인다. 주요 파벌과 캐릭터들을 알기 쉽게 정리해본다.
*본 포스팅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TEAM 범석 : 무능한 경찰과 파이팅 넘치는 브레인
영화의 중심에서 가장 무지한 상태로 사건에 휘말리지만, 끝까지 살아남아 관찰자 역할을 하는 그룹이다.
- 고범석 (황정민): 호포항의 출장소장. 경찰 제복을 입고 있지만 마을 청년들에게도 무시당하기 일쑤인 무능한 인물이다. 외계인을 가장 무서워하고 허둥대면서도, 끊임없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려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무지함’을 가장 잘 대변하는 화자다.

- 임성애 (정호연): 딜러와 힐러 약힐까지 하는 호포항의 실질적 해결사. 삐걱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유유히 등장해 실소를 자아내지만, 사실은 굉장히 똑똑하고 파이팅 넘치는 주체적인 인물이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마을 사람들을 회관에 소집해 재무장시킨 뒤 다시 맞서 싸우자”라는 당찬 반격 계획을 세워 범석을 아연실색하게 만들기도 한다.

- 낙연 (이상희): 엉뚱하게도 다리 밑에 숨어 있다가 범석 일행과 합류하게 되는 콤비이다. 활과 도끼 등 원시적인 무기로 무장한 채 극의 개그 코드를 담당하며, 쉽게 죽을 것 같으면서도 끝까지 끈질기게 살아남는 무서운 생명력의 소유자이다.

2. TEAM 성기 :호포항 최고의 전투력, 행동대장들
외계인들을 향해 가장 적극적으로 화력을 퍼부으며 맞서 싸우는 어촌계의 젊은 피들.
- 고성기 (조인성): 이 영화의 실질적인 액션 영웅이자 전투력 만렙의 백수 청년. 흑마를 타고 한 손으로 AK 소총을 연사하며 마베이요(장군 외계인)와 짐승 같은 추격전을 벌인다. 불도저처럼 상황을 돌파하려 하며, 인간이라면 마땅히 죽고도 남을 공격에도 쓰러지지 않는 초인적인 맷집을 자랑한다.
- 성기 일당들: 성기를 필두로 함께 무장을 하고 외계인과 피 튀기는 전면전을 벌이는 호포항의 청년 무리. 탁월한 패션 감각이 남자 아이돌 그룹 코르티스를 닮아 ‘호르티스’라는 별명도 붙었다.

3. 숲속에 왔던 아저씨들 :욕망에 눈이 멀어버린 기마대
어촌계의 중장년 형님들로 구성된 이들은, 재난 상황에서도 ‘돈’을 좇아 움직이다가 가장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는 그룹이다.
- 현호 및 어촌계 형님들: 숲속에 떨어진 우주선을 발견하고, 그것이 엄청난 돈이 될 것이라 착각하여 총과 말을 챙겨 숲으로 향한다. 하지만 그곳은 이미 외계인들의 앞마당이 된 상태. 백마를 타고 달리던 현호 등 기마대 아저씨들은, 숨어있던 외계인들의 역습에 상반신이 뜯겨나가는 등 영화 내내 가장 시각적으로 충격적인 참극의 희생양이 된다.

4. 트럭에 타있던 노인들 :호포항에서 매드맥스 찍어버리는 숨은 고수들
한국판 매드맥스가 있다면 딱 이럴것 같은 씬스틸러들. 이들에게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보이지 않는다.
- 무장한 촌로들: 대피를 위해 트럭 짐칸에 빼곡히 올라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다. 평범한 시골 노인들인 줄 알았으나, 외계인의 습격이 시작되자 놀랍도록 능숙하게 총기를 결합하고 탄창을 갈아 끼운다. 심지어 허둥대는 경찰 범석에게 위력이 약한 총 대신 묵직한 M16을 쥐여주며 “쏠 줄 알아?”라고 훈수와 핀잔도 서슴지않는다.
5. 해술 & 양배 : 중요한 듯 중요하지 않은 이들
어느 파벌에도 속하지 않지만, 이 끔찍한 사태의 시작과 진실을 쥐고 있는 핵심 인물들.
- 해술 아저씨 (임현식): “해술이 아저씨가 그렇다면 그런거야.” 산속을 누비는 심마니이자 호포항의 무한 신뢰를 받는 존재. 급한 변의를 느껴 풀숲에서 볼일을 보던 중, 외계인과 곰 떼가 벌이는 참혹한 혈투를 가장 먼저 목격한다.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이 본 진실을 끊임없이 전달하려 하는 일종의 ‘선지자’ 같은 역할을 한다.

- 양배 (음문석): 군복을 즐겨 입는 목수이자 시한폭탄 같은 남자. 숲에서 우연히 아기 외계인 ‘칼리’를 주워 돈을 벌 목적으로 사냥하면서, 외계인들의 무자비한 보복(호포항의 멸망)을 불러온 만악의 근원이다.

6. TEAM 외계 : 고귀하신 이방인들
처음에는 그저 짐승이나 끔찍한 괴물처럼 보였으나, 극이 진행될수록 이들이 우리보다 훨씬 더 이성적이고 체계적이며 끈끈한 유대감을 가진 ‘지성체’임이 드러낸다. 소속사 SNS에서 공개한 외게생명체들의 관계도를 자세히 살펴보자.

- 마베이오 (마이클 패스벤더): 외계 진영의 행동대장이자 ‘장군’. 사각형으로 길게 찢어지는 기괴한 입을 가졌으며, 숲속 기마대를 궤멸시킬 만큼 압도적인 신체 능력과 속도를 자랑한다. 극 후반부 언덕길에서 성기, 범석과 숨 막히는 추격전을 벌이는 장본인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의 맹목적인 충성심인데, 모든 희망이 사라진 절망적인 엔딩 속에서도 기어코 죽은 아기 외계인(칼리)을 살려내겠다며 자신의 심장을 꺼내어 바치는 결연하고도 숭고한 의지를 보여준다.

- 조르 (알리시아 비칸데르): 외계 일행 중 가장 지위가 높은 왕족(여왕 혹은 왕후)이자 마베이요가 모시는 상관이다. 인간 진영의 해술 아저씨와 더불어 극 중 유일하게 ‘꿈’을 꾸는 신비로운 존재로 묘사된다. 동족의 구조 함선이 눈앞에서 폭발해 버리는 우주적인 절망 앞에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고 운명을 극복하겠다는 강인한 태도를 보여준다.

- 칼리 (아기 외계인): 이 모든 비극의 스노우볼을 굴린 결정적인 존재이자 외계 행성의 고귀한 세자(황태자)이다. 불시착 후 지구의 숲을 탐색하다가, 돈에 눈이 먼 양배(음문석)에게 사냥당해 허무한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죽음은 외계인들이 호포항을 쑥대밭으로 만들며 인간들을 ‘사냥감’으로 삼게 된 완벽한 명분이 된다.

- 바미기르(밤이길어..) : 초반에 시장을 쑥대밭으로 만든 진격의 거인 에렌 예거..아니 외계인은 사실 밤샘 근무에 지친 주방 보조 ‘바미기르’.. 주방 보조임이 공개된 후 영화 초반 등장하는 소가 공격당한 이유가 좋은 식재료(SSS한우)를 찾기위한 여정이었다는 뜬 소문도 퍼지고있다.

- 아이도보르(아이돌봄..): 나무에 매달려서 나무로 만든 도끼를 들고 기습을 하던 여성형 외계인은 세자를 돌보던 유모(아이도보르)였다. 나홍진 감독식 아재스러운 작명 센스가 돋보인다.

- 크르시니 : 성기 일행이 우주선 내에서 발견했던 졸귀 파닥몬의 정체. 칼리의 친구 내지는 반려동물 같은 존재라고 합니다.

이처럼 <호프>는 단순히 ‘인간 vs 외계 괴물’의 구도를 넘어, 무지하고 비천한 인간과 고상하고 의지력 강한 외계인이라는 설정을 완벽하게 도치시켜 놓았다. 아직 관람 전이라면, 꼭 극장에서 호며들어보시길 추천한다.
호포항의 다채롭고 기괴한 캐릭터들이 얽히고설킨 관계를 모두 파악하셨다면, 이번에는 이 모든 비극이 향하는 충격적인 결말과 그 속에 숨겨진 나홍진 감독의 메시지를 들여다볼 차례입니다. 백주 대낮에 펼쳐지는 압도적인 공포와 진짜 ‘희망’의 의미를 파헤친 심층 리뷰가 궁금하다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