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에게 은퇴란 없다고 합니다. 그저 내면의 음악이 멈출 때까지 연주를 계속할 뿐이죠. 제 안에는 아직 음악이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언젠가 일선에서 물러나야 하는 퇴직의 순간을 맞이한다.
수십 년간 매일 아침 출근할 곳이 있었고 나를 필요로 하는 자리가 있었지만, 그 모든 타이틀이 사라진 후 맞이하는 일상은 어떤 모습일까?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영화 <인턴>은 이 무겁고도 막막한 질문에 가장 따뜻하고 유쾌한 해답을 내놓는 작품이다.
40년 가까이 전화번호부 회사에서 근속하고 퇴직한 70세의 벤(로버트 드 니로)이, 30세의 젊은 CEO 줄스(앤 해서웨이)가 이끄는 바쁜 이커머스 패션 스타트업에 ‘시니어 인턴’으로 입사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지켜보며, 나는 ‘어떻게 나이 들어갈 것인가’에 대해 깊은 영감을 받았다.

퇴직, 끝이 아닌 새로운 쓸모를 찾아가는 과정
영화 초반, 아내와 사별하고 화려했던 직장 생활마저 퇴직으로 마무리한 벤의 일상이 잔잔하게 그려진다. 그는 요가도 배우고, 외국어도 공부하고, 세계 여행도 다녀보지만 마음 한구석에 뚫린 구멍을 채우지 못한다. 그 구멍은 다름 아닌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인간의 근원적인 소속감이었다.
이 대목을 보며 나는 평생을 바쁘게 살아오신 우리네 부모님들의 뒷모습, 혹은 먼 훗날 나의 미래를 겹쳐 보며 깊은 공감을 느꼈다. 벤은 자신의 텅 빈 일상을 한탄하는 대신, 까마득히 어린 상사들이 있는 스타트업의 인턴 프로그램에 기꺼이 이력서를 낸다. 과거의 영광을 내려놓고 가장 말단 자리에서 새로운 배움을 시작하려는 그의 용기는, 퇴직이 인생의 셧다운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챕터의 시작이 될 수 있음을 눈부시게 증명해 보였다.

꼰대가 아닌 진짜 ‘어른’의 품격을 보여준 로버트 드 니로
이 영화가 그저 그런 세대 차이 코미디로 전락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단연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한 ‘벤’이라는 캐릭터의 품격 덕분이다.
그는 젊은 직원들에게 자신의 과거 경험을 내세우며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지켜보고, 누군가 도움을 청할 때만 조용히 다가가 지혜를 나눈다. 바빠서 밥도 거르는 줄스에게 따뜻한 수프를 챙겨주고, 우는 동료에게 건네주기 위해 항상 각 잡힌 손수건을 주머니에 품고 다니는 그의 클래식한 태도는 화면 너머의 내 마음까지 든든하게 다독여주었다. 타인의 삶에 함부로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필요할 때 기댈 수 있는 단단한 기둥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영화를 통해 배운 진짜 ‘어른’의 모습이었다.

클래식과 트렌드의 완벽한 조화, 세대를 뛰어넘는 위로
모든 것이 1분 1초 단위로 빠르게 돌아가는 스타트업 생태계 속에서, 벤의 낡은 서류 가방과 느릿하지만 정확한 아날로그 방식은 묘한 안정감을 만들어낸다.
젊은 CEO 줄스는 벤의 연륜을 통해 속도에 치여 놓치고 있던 삶의 여유와 자신감을 되찾고, 반대로 벤은 젊은 세대와 교감하며 페이스북 가입하는 법을 배우는 등 다시금 세상과 연결되는 기쁨을 누린다. 서로의 다름을 배척하지 않고, 각자의 결핍을 채워주며 완벽한 파트너가 되어가는 두 사람의 연대를 지켜보는 것은 내내 흐뭇하고 가슴 벅찬 경험으로 다가왔다.

속도전에 지쳐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날이라면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지 흔들릴 때, 혹은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밀려올 때 이 영화를 다시 꺼내보고 싶어질 것 같다.
경험은 결코 늙지 않으며, 우리의 삶은 언제든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다정한 응원을 받고 싶다면 이번 주말 로버트 드 니로의 따뜻한 미소가 담긴 <인턴>을 꼭 감상해 보시기를 권한다.

나이와 과거의 영광을 내려놓고, 다정한 태도로 ‘진짜 어른’의 품격을 보여준 <인턴>의 벤에게 깊은 매력을 느꼇다면, 여기 대기업 부장이라는 화려한 명함과 타이틀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진짜 자신의 삶을 마주하게 된 지극히 현실적인 어른의 이야기도 있다. 회사 밖의 ‘온전한 나’를 찾는 여정이 궁금하다면.
👉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내 명함이 나의 전부가 아님을 깨닫는 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