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명함이 나의 전부가 아님을 깨닫는 시간 : 넷플릭스 추천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리뷰

“나는 대기업 부장이다. 서울에 내 집도 있다. 너희들과는 급이 다르단 말이다.”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어보았을, 혹은 겪고 있을 뼈 아픈 현실을 이토록 적나라하게 까발린 작품이 또 있을까.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플랫폼과 웹툰 등 다양한 콘텐츠로 변주되며 수많은 직장인들의 밤잠을 설치게 만든 화제작,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를 정주행하며 나는 내내 거울을 보는 듯한 부끄러움과 씁쓸함을 동시에 느꼈다.

화려한 판타지나 통쾌한 복수극은 없다. 그저 매일 아침 지옥철을 타고 출근하는 우리들의 민낯이 그대로 담겨 있을 뿐이다. 오늘은 이 무겁고도 처절한 하이퍼 리얼리즘 드라마의 원작과 작가에 대한 이야기부터, 작품을 보며 느꼈던 깊은 여운까지 찬찬히 나누어 보려 한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영화 포스터 이미지로, 정장을 입은 남성이 서울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고층 건물 옥상에서 균형을 잡는 모습이 도시 직장인의 불안과 욕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
출처: tmdb

11년 차 평범한 직장인이 쏘아 올린 현실 고증 다큐멘터리

이 작품을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는 원서와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놀라운 서사의 창조자인 송희구 작가는 전문 소설가가 아니다. 그는 평범하게 회사를 다니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11년 차 직장인이었다.

점심시간과 출퇴근 시간의 자투리를 쪼개어 익명 커뮤니티와 블로그에 무심코 연재했던 글이 이 모든 신화의 시작이었다. 작가 본인이 조직 사회의 꼰대 문화, 승진에 대한 압박, 그리고 주식과 부동산으로 철저히 계급이 나뉘는 한국 사회의 팍팍한 현실을 최전선에서 겪었기에, 그의 글에는 어설픈 상상력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인터넷상에서 폭발적인 공감과 조회수를 기록한 이 이야기는 결국 종이책으로 출간되어 3권짜리 시리즈(김부장 편, 정대리·권사원 편, 송과장 편)로 완성되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텍스트로 읽을 때부터 활자가 살아서 펄떡이는 것 같았는데, 이것이 생생한 영상 콘텐츠로 눈앞에 펼쳐지니 마치 우리 회사 부장님의 일상을 몰래카메라로 훔쳐보는 것 같은 기막힌 몰입감을 느낄 수 있었다.

송희구 작가의 프로필사진
송희구 작가 / 출처: 나무위키

‘서울 자가’와 ‘대기업 타이틀’이라는 위험한 착각

작품의 중심을 이끄는 김부장은 전형적인 ‘꼰대’다.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대기업에 다닌다는 자부심과, 서울 요지에 빚 없이 자가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의 완벽한 계급장으로 여긴다. 명품으로 치장하고 외제차를 타지만 정작 집은 없는 후배를 속으로 비웃고, 승진에 목을 매며 윗사람에게 아부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처음엔 혀를 차며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극이 진행되고 은퇴라는 거대한 장벽이 김부장의 목을 조여올 때, 내 감정은 혐오에서 깊은 연민으로 바뀌어 갔다. 회사 밖을 나서는 순간 ‘대기업 부장’이라는 명함은 한낱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고, 그가 평생을 바쳐 믿었던 회사는 결코 그의 남은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았다. 사기를 당하고, 후배들에게 밀려나며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김부장의 눈물을 보며 나는 아찔한 위기감을 느꼈다. “나 역시 회사라는 울타리와 직함을 나의 온전한 가치로 착각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무거운 질문이 가슴을 짓눌렀기 때문이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영화 스틸 이미지로, 사무실 안에서 정장을 입은 남성이 서류가 흩날리는 가운데 건물 모형과 자동차 모형을 들고 있는 모습이 부동산과 성공 욕망에 흔들리는 직장인의 삶을 표현한 장면.
출처: tmdb

김부장을 욕하다가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거울

이 작품이 무서운 이유는 단지 나이 든 꼰대 부장만을 조명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외제차와 명품에 영혼을 갈아 넣으며 카푸어(Car Poor)의 삶을 사는 욜로족 정대리, 결혼과 내 집 마련이라는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하는 평범한 청춘 권사원, 그리고 묵묵히 짠테크와 투자를 병행하며 경제적 자유를 이룬 멘토 송과장까지.

각기 다른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의 삶이 교차하는 것을 보며, 나는 그들 중 누구 하나 함부로 손가락질할 수 없음을 느꼈다. 정대리의 허세 속에는 타인에게 뒤처지기 싫은 내 안의 얄팍한 허영심이 숨어 있었고, 권사원의 한숨 속에는 당장 내일의 대출 이자를 걱정하는 내 팍팍한 현실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결국 김부장이라는 인물을 방패막이 삼아, 자본주의 사회를 헐떡이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불안하고 초라한 욕망을 비추는 아주 잔인하고도 투명한 거울처럼 다가왔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영화 스틸 이미지로, 정장을 입은 남성이 옥상에서 동료들에게 음료를 들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회사 생활 속 여유와 미묘한 관계의 긴장을 함께 보여주는 장면.
출처: tmdb

자본주의의 계급장, 그 너머의 ‘진짜 나’를 묻다

작품을 모두 덮고 났을 때, 이 이야기가 단순한 직장인 생존기를 넘어 우리 삶의 근본적인 태도를 묻는 날카로운 철학서처럼 느껴졌다.

김부장의 비극은 그가 악해서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외부의 잣대(아파트 평수, 회사 명함, 연봉)’를 자신의 ‘내면의 크기’와 완벽하게 동일시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타이틀이 벗겨지는 순간 그는 스스로 설 수 있는 근육이 전혀 없는 나약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묻고 있다. 회사와 자산을 모두 걷어내고 남은 당신의 진짜 이름 석 자는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느냐고. 결국 이 작품은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독립적인 정체성과 내면의 힘을 길러야만 이 차가운 시스템 속에서 진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뼈아픈 진리를 일러주고 있었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영화 스틸 이미지로,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손을 맞대는 모습이 일상적인 저녁 식사 속 따뜻한 가족 관계와 소박한 행복을 담아낸 장면.
출처: tmdb

내 명함이 낯설게 느껴지는 모든 직장인들에게

회사에서 부품처럼 소모되고 있다는 허무함이 밀려올 때, 혹은 동료들의 주식과 부동산 수익 자랑에 배가 아파 밤잠을 설친 적이 있다면 당장 이 작품을 보길 권한다.

성공을 향한 화려한 판타지를 심어주지는 않지만, 지금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현실이 얼마나 냉혹한지, 그리고 내 삶을 지탱하는 진짜 무기는 회사 명함이 아니라 나 스스로의 단단한 내면과 준비성에 있다는 것을 아주 뼈저리게 가르쳐 줄 것이다. 쓰디쓴 한 잔의 소주처럼 목구멍을 긁고 넘어가지만, 결국 내일 다시 출근길에 오를 묵직한 예방주사가 되어줄 훌륭한 수작이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영화 포스터 이미지로, 안전모와 작업 조끼를 입은 남성이 대형 케이블 드럼 옆에 선 모습이 직장인 코미디 영화의 과장된 현실감과 유쾌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장면.
출처: tmdb

대기업 부장이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잃고 ‘은퇴’라는 차가운 현실의 무인도에 떨어져야 했던 김부장의 씁쓸한 이야기를 보았다면, 반대편에는 세계적인 기업의 엔지니어라는 직함을 잃고 진짜 무인도에 떨어져 생존해야 했던 한 남자의 숭고한 이야기가 있다. 문명과 명함이 모두 사라진 곳에서 비로소 삶의 진짜 나침반을 찾아낸 위대한 생존기가 궁금하다면. 👉 [캐스트 어웨이: 시간과 외로움이 멈춘 무인도에서 인생의 나침반을 다시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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